벌써 녹기 시작하네 그녀
그의 손으로 백만 번 조각된 얼굴
입술 사이로 사각사각
공기를 갉아먹는 이빨 금세 자라지
그녀를 그리다 지우고
지우다가 다시 그려대는
힘줄 구불구불한 손이
흰 드레스를 입히고 백합꽃 한 아름식 안겨주지
딱딱한 그녀 단단한 그녀 미끄러운 그녀 차가운 그녀
점점 짧아지는 키에 맞춰 관을 찌곤 하지
줄어드는 그녀 일주일 동안 잠만 자는 그녀
녹았다가 흐르다가 스며들다가 꽝꽝 얼음이 되고 마네
후들거리는 손에 끌과 정을 들고
얼음 얼굴 얼음 가슴을 만들다
제 손들 찍고 마는 알코올중독 조각가
툭툭 불거진 그의 혀로간 속으로
초점 없는 눈동자 속으로 흘러드는 그녀는
수천 개 얼음 조각
입자마자 사라지는 치마를
매일 뒤집어 입는 그녀
문을 열 때마다 얼룩만 남아 있지
권오영 시인
강원도 원주 출생.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 졸업. 2008년 『시와반시』로 문단에 나왔다. 시집 『너무 빠른 질문』을 발표 했다
출처: 권오영 시집 ⟪너무 빠른 질문⟫ 천년의시작, 2016. 누리진
얼음치마
얼음치마 권오영 벌써 녹기 시작하네 그녀 그의 손으로 백만 번 조각된 얼굴 입술 사이로 사각사각 공기를 갉아먹는 이빨 금세 자라지 그녀를 그리다 지우고 지우다가 다시 그려대는 힘줄 구불구불한 손이 흰 드레스를 입히고 백합꽃 한 아름식 안겨주지 딱딱한 그녀 단단한 그녀 미끄러운 그녀 차가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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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빠른 질문
시작시인선 197권. 2008년 『시와반시』로 등단한 권오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권오영의 첫 시집 『너무 빠른 질문』은 삶과 사물에 대한 깊은 사유와 감각을 전혀 다른 목소리로 치환하고 배열하는 작법에 의해 쓰인 미학적 결실이다. 권오영 시편에는 순간순간 소멸해가는 존재자들의 쓸쓸하고도 불가피한 속성이 후경後景처럼 둘러져 있고, 그 안에는 신음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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