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 소리를 돌려드리다 | 류지남
2019.11.02
치매의 돌부리에 옴팡 걸려 넘어진 당신은 반세기 넘도록 벽에 걸려 있는 사진 속 얼굴이 아니, 애를 둘씩이나 달고도 언감생심 열아홉 꽃 처녀에게 장가들었던 잘난 남편인지, 엥간히도 속 썩이던 셋째 아들인지, 영 헷갈린다 두어 시간마다 용변을 보시게 하느라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일으키다 보면 팔남매를 키워 낸 젖무덤이 아직도 뭉클하다 변기에 앉히고 바지와 기저궈를 벗긴 뒤, 아주 오랜 옛날 내 귓바퀴를 간질여 주었을 쉬이- 쉬이-, 소리를 귀에 불어 넣는다 이윽고 빗방울 소리, 시냇물 흐를는 소리 멎고 휴지를 쥔 내 손이 신호등에 걸린 듯 멈칫, 한다 부엌에서 밥하는 아낼 부를까 어쩔까 망설이다가 먼 산 바랭이처럼 아득한 천장이나 바라보며 어림짐작으로 질끈 뒷갈망을 끝낸다 당신은 이미 오래 전에 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