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산천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할머니는 나 씨 가문으로 시집간 큰딸을 보러
떡보따리를 이고 막내고모를 업고 천방산을 바라보며
이 길을 하염없이 걸었을 것이다.
갈밭 길을 걸으며 마흔 세 살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선린학교 태극기 사건에 연루되어
초주검이 된 큰 고모부 옥바라지하러
할머니는 애달복달 장항선 열차 타고
고모네 신혼집을 오르내렸다한다.
젖먹이 안고 울고 있는 큰딸
오로지 청상과부 될까하여.
이 강을 타고 소정방이 뻘에 길을 내며
상륙했다한다.
왜구 떼가 들이닥쳐 온 들판에
송장이 즐비했다한다.
갑오 난리 때 동학군 관군들의 송장이
끝도 없이 펼려졌다한다.
나는 지금 이 길을 걷는다.
갈숲과 억새와 기러기 떼 아우성치는
겨울들판을 걷는다.
목을 간지럽히는 바람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언젠가 내 아들이 이 길을 걸을 것이다.
박광배 시인
1959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1984년 실천문학사 시선집 「시여 무기여」에 '용평 리조트'외 1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삶으로 시를 쓰다 29년 만에 시집 「나는 둥그런게 좋다」를 출간 했다.
출처: 박광배 시집 «나는 둥그런 게 좋다»(2013), 누리진
서천 가는 길
서천 가는 길 박광배 길산천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할머니는 나 씨 가문으로 시집간 큰딸을 보러 떡보따리를 이고 막내고모를 업고 천방산을 바라보며 이 길을 하염없이 걸었을 것이다. 갈밭 길을 걸으며 마흔 세 살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선린학교 태극기 사건에 연루되어 초주검이 된 큰 고모부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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