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 국가보안법철폐 단식 농성장에서
지난 50여년간
날마다 해가 보이지 않았다
저 뒷골목 환락가 백야의 등불이 아무리 휘황해도
날씨는 늘 흐리고 어둠 침침했다
가끔 검은 폭풍이 불어닥쳤다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타러 가는 날도
마음이 허기져 통 비뻐지질 않았다
감옥 창살을 부여잡고
발을 구를는 아우성만이 무거운 공기를 뚫고 울렸다
한국 언론아 어디 한번 말해 봐
왜 이리도 우울하고 답답하냐?
다시 물어보자
네가 외세나 악법 철폐를 주장한 일이 있니?
이북을 똑바로 보고 제대로 보도한 적이 있니?
친일, 친미, 친금권 외에 한 일이 있냐
그러고도 신사랍시고 넥타이를 매고 다니지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
2000년 12월 5일 오전 10시 아침
명동성당 민주성지 계단
국가보안법철폐 농성 천막 깃발이 휘날렸다
재야단체장과 원로들이
박정희기념관 저지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장
그 목소리는 하늘에 닿아건만
다음날 새벽 불나게 한겨레신물을 펼쳤다
박정희기념관 저지 기사는 아예 없고 사회면 아래구석에 ‘국민연대, 국보법폐지 촉구’ (3호활자) 제하의 1단 기사 열한줄 뿐
그 옆 ‘서울대생 73% 수학 어려워’ (2호활자) 제하의 2단 기사 41줄
최진실 결혼식 기사도 2단에 사진을 곁들여 19줄
그래, 민주화나 통일문제보다 학력이나 결혼문제가 더 중요하단 말인가
무식도 유만부동이지
여타 신문은 이미 버린 자식이라 치자
국민주 신문 ‘한겨레’마저 이래서야 되나
통일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언론은 지난 50여년간 이런 식으로 썩어왔다
반공교육의 만력을 실감했다
통일을 외면하는 언론
언론의 수치다 수치다
단군 할아버지와 선열들이 호령하신다
‘덱끼, 미지한 망동인고!’
역사와 겨레가 꾸짖는다
‘철부지들아, 앞으로 나아가야지······’
(2000, 12, 10. 분당 숯내가에서)
이기형 시인
1917년 11월 10일(음력 9월 26일)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나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일본대학 예술부 창작과를 수학했다. 아호는 여민與民.
1943년 해방 직전까지 '지하협동단사건', '학병거부사건' 둥 항일투쟁 혐의로 수차례 피검되어 약 1년 동안 복역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때 ⟨동신일보⟩ ⟨중외신보⟩ 등의 기자로 활동했으며, 1947년 ⟨민주조선⟩에 최초로 시를 발표했다. 1947년 7월에 정신적 지도자로 모시던 몽양 여운형이 암살당하자, 창작 및 사회활동을 중지했다.
1980년 3월 절필 33년 만에 시 창작을 재개하여 1982년 6월에 첫시집 『망향』을 간행하고, 1983년 무크 『실천문학』 제4권 ⟨삶과 노동과 문학⟩에 「파문」 「단풍」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89년 '시집 『지리산』 사건에'에 연루되기도 했으며, 1999년 '사월혁명상'을 수상했다.
출처: 이기형 통일시집 『역사의 정답』(들꽃, 2015). 누리진
해가 보이지 않는 나라의 언론백서
해가 보이지 않는 나라의 언론백서 -눈보라 속 국가보안법철폐 단식 농성장에서 이기형 지난 50여년간 날마다 해가 보이지 않았다 저 뒷골목 환락가 백야의 등불이 아무리 휘황해도 날씨는 늘 흐리고 어둠 침침했다 가끔 검은 폭풍이 불어닥쳤다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타러 가는 날도 마음이 허기져 통 비뻐지질 않았다 감옥 창살을 부여잡고 …
www.nurizine.com
역사의 정답
이기형 시집 『역사의 정답』. 크게 네 묶음으로 나뉜 ...
www.kyobob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