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귀를 달고 개화하는 튤립 | 천수호
2019.10.29
파도의 귓바퀴 속을 걸어 들어가 봐 튤립 싹이 왜 귀부터 여는지 알게 될 거야 파도와 파도 사이 그 조용한 시간을 견디는 게 튤립의 전全, 생生이거든 코끼리 코로 겨울을 견디는 오동나무 둥지나 손바닥 펴 보이는 맨주먹의 어린 싹들도 전 생을 맡긴 땅에다 귀부터 갖다 대거든 왼쪽으로 세 번 오른쪽으로 두 번 또 왼쪽으로 한 번 길을 몇 번 꺽다보면 번호를 잊어버린 녹슨 금고 앞에 선 것처럼 아득해져서 어디 먼 데를 향해 귀부터 열게 되거든 파도의 귓바퀴를 한 바퀴 굴러 나오는 윈드서퍼가 다음 파도를 기다리며 귀를 열듯이 튤립은 그 어디를 향해 귀를 열면서 죽은 새 대가리 하나를 쑤욱 낳았던 거야 더보기 천수호 시인 1964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명지대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