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한 칸을 빌어
십수 년을 살면서
이게 어디냐고
가끔은 걸레질 비질도 했는데
이제는 더러움에 익숙했는지
그게 다 내 살 같다
빠릿빠릿하다고 다 광이 나는 것도 아닌 삶
게으름도 사는 법法이라면 법 같다
술에 치여 보낸 밤도 많았고
화가 나서 뜬눈으로 보낸 날도 있었고
그러던 어느 날 그놈이, 참 듬직한 걸
보았다, 거미란 놈
눈이 시려 실눈을 뜨고 새벽같이 일어나
칫솔질을 하는데, 이제는 쩍쩍 금이 가는 남의 집
그 틈새에 끼여 거미줄을 치는 그놈은
실은 제 집을 짓는 게 아닌가
남의 집 한 켠을 빌어 사는
내 삶의 한켠에 번듯하게 제 집을 짓는 저 놈
흐릿한 거미줄 틈으로
멀리 사라지는 내 등이 보인다
더 이상 걷어 낼 거미줄은 아닌 것이다
김이하 시인
1959년 전북 진안 오천리에서 출생. 1989년 『동양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내 가슴에서 날아간 UFO⟫, ⟪타박타박⟫, ⟪춘정, 火⟫, ⟪눈물에 금이 갔다⟫를 출간 했다. 『新婦』(여원사) 잡지 기자를 거쳐, 오랫동안 사보와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 생활을 했다. 한글문화연구회에서 ⟪우리말 갈래 사전⟫ 책임연구원을 지냈고, ⟪KT네트웍스 20년사⟫, ⟪코스콤 30년사⟫, ⟪대한주택공사 47년사⟫, ⟪KCFeed 40년사⟫, ⟪화성상공회의소 20년사⟫, ⟪한국우정 130년사⟫, ⟪포항가속기연구소 25년사⟫ 등 사사와 ⟪세종시 출범 백서⟫등을 집필했다.
출처 : 김이하 시집 ⟪눈물에 금이 갔다⟫ 도화, 2016.
눈물에 금이 갔다
중견 시인 김이하의 네 번째 시집 『눈물에 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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