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간단하게 때우자고 꾀는데 성공한 아침
열어젖힌 부엌장에 라면은 사라지고
빈자리에 허영만 한 보따리 졸고 있다
볶음밥 해 줄게
떨어졌지?
……
그럴 줄 알았어
짜증의 깃털로 엮은 날개를 펼치고
편의점으로 날아가다 현관문에 부딪히고 말았다
상처 입은 날개를 접는데 아는 척 하는 마트전단지
날개를 끌고 냉장고 앞으로 기어가는 소심한 이카루스
칸칸의 게으름을 꺼내 빙하의 시간을 녹인다
국적불명의 볶음밥으로 겨우 달랜 고픈 배
동네마트에서
비상탈출용 동아줄을 들고 와서 외친다
라면사다놓았음
*이카루스는 미로를 만든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다이달로스는 자신이 만든 미로에 갇히자 새들의 깃털을 모아 날개를 만들어 달고 아들과 함께 탈출을 시도한다(그리스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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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진 시인
1971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과 졸업 동 대학원 언어학 석사. 2015년 월간 『시문학』에 "우편함" "주민등록증" "서울지하철 2호선"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출처: 누리진
라면
라면 유수진 일요일은 간단하게 때우자고 꾀는데 성공한 아침 열어젖힌 부엌장에 라면은 사라지고 빈자리에 허영만 한 보따리 졸고 있다 볶음밥 해 줄게 떨어졌지? …… 그럴 줄 알았어 짜증의 깃털로 엮은 날개를 펼치고 편의점으로 날아가다 현관문에 부딪히고 말았다 상처 입은 날개를 접는데 아는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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