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사랑을 잃고
오뉴월 금강, 뜨거운 백사장을 맨발로 걸었네
누룩뱀 한 마리가
쥐눈이콩만 한 눈망울로 연애를 걸어왔네
얼마나 간절했는지
혓바닥이 쩍 갈라져 있었네
그의 어디까지가 목인지
어디를 어깨라 불러야 할지
어디부터가 꼬리인지
당분간 생각하지 않기로 했네
그는 허공을 말아 쥔 똬리를 풀어
은빛 가슴을 보여 주었네
지독한 누룩 내에 코끝이 찡해졌네
성기와 항문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온 발가락에 힘을 주어
백사장에 초서체의 뜨거운 연서를 써 주었네
나는 왜 그처럼 온 발가락에 힘을 주어, 사랑하는 이에게 누룩 내 나는 연서 한 장 쓰지 못했던 것일까
하도 외롭고 쓸쓸하여
오늘만은 무릎 꿇고
비늘 속 구석구석 숨어있는
누룩 내 나는 그의 사족을 다 씻겨주고 싶은데
그와 함께 저문 강을 건너
무너진 토성(土城)의 슬하에 머릴 박고
비릿한 초록의 체액을 실컷 핥아보고 싶은데
그는 연지(蓮池)*에 빠진 떡갈나무 그늘을 달래주러
홀로 강을 건넌다 하네
어깨를 부딪치는 차가운 물살 따윈
잠시 잊기로 했다는 듯
쇠못처럼 꼿꼿하게 대가리를 쳐들고
간드러지게 꼬리를 흔들며
푸른 강을 저만치 건넌다 하네
나는 왜 대가리를 꼿꼿하게 쳐들고, 사랑하는 이에게 간드러지게 꼬리 한 번 흔들지 못했던 것일까
두 번째 사랑이 방금 떠나갔네
* 공주 공산성(公山城)에 있는 백제 시대 연못.
임경묵 시인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충남 천안에서 자랐다. 2008년 하반기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을 졸업했다.
출처: 누리진
누룩뱀과 사귀다
누룩뱀과 사귀다 임경묵 첫 번째 사랑을 잃고 오뉴월 금강, 뜨거운 백사장을 맨발로 걸었네 누룩뱀 한 마리가 쥐눈이콩만 한 눈망울로 연애를 걸어왔네 얼마나 간절했는지 혓바닥이 쩍 갈라져 있었네 그의 어디까지가 목인지 어디를 어깨라 불러야 할지 어디부터가 꼬리인지 당분간 생각하지 않기로 했네 그는 허공을 말아 쥔 똬리를 풀어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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