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더 가까울 듯 높다랗게 늘어선
서울시청 옆 전광판에
벌써 몇 달째 누에고치 달려 있다
명절 연휴 다들 고향길 서두르는데
부산한 거리와 등을 돌린 채 묵념하듯 매달려
북악산에서 몰려오는 찬바람을 견디고 있다
손을 놓으면 멀리
궤도 밖으로 던져질까 두려워
끝끝내 힘주어 잡은 간격
메아리를 삼켜버린 Echo 계곡
온몸으로 말하는 누에고치 두 개
맨몸으로 명절을 넘기고 있다
모델들의 미끈한 다리를 닮은
티볼리는 광고판 속을 질주하고
넥타이를 꼭 조인 샐러리맨들 빌딩숲에 쏟아지지만
버려진 거짓들
누구 하나 말하지 않는 겨울
누에고치들은 더욱 높은 데로 올라갈 채비로 분주하다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굴뚝
식어버린 불씨를 되살리는 일
수당도 퇴근도 없이 무기한을 견디며
지상의 사람들과 교신이 끊긴 날
보청기를 잃어버린 하느님과
접선 시도 중이다
하느님의 안테나 하나 얻어
전광판이 다 옮기지 못한 말
북악산으로 연방 날리지만
광화문 높은 담벼락 오르지 못하고
떨어져 산산이 부서져 버린 약속
더 높은 벼랑을 오른다
방송국 송신탑보다 한 발이라도 더 올라야
솔깃한 소리들 넘어
그리운 사람들에게 닿는 말 지키기 위해
단지 오르고 또 오를 뿐
침낭 속 누에고치 되어
얼음의 세상을 건넌다
거리를 덮은 신문지 넘어
살아 있는 말 한 줄 지키기 위해
아이는 오늘밤도 문소리에 청각을 모을 것이다
두 손에 선물 가득 들린 발소리
* 행잉코핀스Hanging Coffins : 필리핀 사가다에 있는 시신이 든 관을 절벽에 매달아 놓은 매장풍습
김림 시인
2014년 《시와 문화》 봄호로 등단, 시집으로『꽃은 말고 뿌리를 다오』가 있음.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출처: 누리진
행잉 코핀스Hanging Coffins
행잉 코핀스Hanging Coffins 김림 하늘이 더 가까울 듯 높다랗게 늘어선 서울시청 옆 전광판에 벌써 몇 달째 누에고치 달려 있다 명절 연휴 다들 고향길 서두르는데 부산한 거리와 등을 돌린 채 묵념하듯 매달려 북악산에서 몰려오는 찬바람을 견디고 있다 손을 놓으면 멀리 궤도 밖으로 던져질까 두려워 끝끝내 힘주어 잡은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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