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옛 이름으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처음 듣는 그것이 내 이름인 줄 알았다
정강이 드러낸 채 첨벙첨벙
강의 이쪽과 저쪽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던 시간
웅녀가 마늘을 먹기 이전부터
첫꿈을 꾸기 이전부터
추운 동굴에서 짐승의 생살을 뜯어 건네던 손
강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를 찍어 누르던 힘줄
죽음이 결부돼 있던 때문일까
매번 아픈 이별로 끝났던 사랑
내생을 기약하며 숨을 놓던 순간들
아득히 오래 전부터 이 강가에 있었다
수심에 잠긴 검은 돌 위에 앉아
폭우와 홍수를 맞았다
백두산 천지에서 텀벙거리던
흰 구름이 떠내려온 적도 있으나
걸쭉한 시궁창 냄새가 났다
아무도 그것을 구름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노루 같은 등을 향해 총탄이 박히고
이국의 유람선이 그 피를 흩뜨리며 항해했다
카메라 플래시와 노래와 웃음이 팡팡 터지는
국경선, 물인 채로 바람인 채로
여전히 기다리는 습성만 남아
두만강 푸른 물은 더 이상 없다
흙탕물 같은 기다림만 있을 뿐
박설희 시인
1964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와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장안문을 머리에 이고」 외 4편으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실천문학, 2008)이 있다.
출처: 박설희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실천문학사(2008), 누리진
아득히 오래 전부터 이 강가에 있었다
아득히 오래 전부터 이 강가에 있었다 박설희 오랜 옛 이름으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처음 듣는 그것이 내 이름인 줄 알았다 정강이 드러낸 채 첨벙첨벙 강의 이쪽과 저쪽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던 시간 웅녀가 마늘을 먹기 이전부터 첫꿈을 꾸기 이전부터 추운 동굴에서 짐승의 생살을 뜯어 건네던 손 강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를 찍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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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소통 부재의 현실에 조용한 울림을 전하는 박설희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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