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문 하나가 있습니다
황금빛 세공을 한 두터운 이 문은, 오래된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생겼습니다
문 앞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문 저편에도 그러할 것임을 나는 어쩐지 알고 말았습니다
문은 닫혀 있습니다
그러나 단단하지만 완강하지는 않게 닫혀 있습니다
문의 양옆에는 그런데 담이나 벽이 없군요 보이지 않는 벽
누가 들어가려는지 또는 나오려는지 문이 조심스럽게 흔들리는군요
너른 들판 한가운데, 문 하나가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점점 커져서 바로 내 앞에 우뚝 서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나는 문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크고 둥근 하얀 방
나는 내가 완벽한 둥근 방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것을 압니다
다시 바라보는 사이에 둥근 천장 아래로 또 문이 생겨납니다 여전히 크고 빛나는 황금빛의 문이
나는 다시 문 안으로 들어와 있고 그곳은 또다시 크고 둥근 방입니다
들어올수록 넓어지는 방 넓어지는 문
문들은 넘쳐나와 모든 곳에 있습니다
모든 곳으로 통하는 단 하나의 문이 있습니다
나는 가장 넓고 가장 둥근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문들이, 둥둥 떠다니는 문들이.
노혜경 시인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1991년 『현대 시 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 『뜯어먹기 좋은 빵』, 『캣츠아이』『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 등이 있다.
출처: 노혜경 시집 『뜯어먹기 좋은 빵』 세계사, 1999. 누리진
여기, 문 하나가······
여기, 문 하나가······ 노혜경 여기, 문 하나가 있습니다 황금빛 세공을 한 두터운 이 문은, 오래된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생겼습니다 문 앞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문 저편에도 그러할 것임을 나는 어쩐지 알고 말았습니다 문은 닫혀 있습니다 그러나 단단하지만 완강하지는 않게 닫혀 있습니다 문의 양옆에는 그런데 담이나 벽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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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어먹기 좋은 빵
언어의 붕괴와 잿더미 속에서 다른 언어를 꿈꾼다고 평가받는 시인의 시로 `고독에 관한 간략한 정의`를 비롯해 `양념과 물고기`,`고래와 달의 관계 혹은 두 겹의 부름`,`동구 밖에는 큰 나무`,`대희년의 달` 등이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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