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누이의 결혼기념일이란 얘길 들었다
누이는 병중에 있고 매제는 먼 곳에 있다
연초부터 부쩍 눈곱이 끼는 팔순의 어머니가
기침처럼 고향에 가보고 싶단 얘길 한다
낮에는 서어나무 숲을 걷는데 도토리 떨어지는
소릴 들었고 산비둘기 우는 소릴 들었다
밤에는 아내의 숨넘어가는 소릴 들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귀는 오랜 우물처럼
너무 많은 것을 담아서
길어도 길어도 얘기가 마르지 않는다
당장이 급해 두 눈이 쌍심지를 켜고 세상 온갖 것을 보아도
삐딱하게 숨어 있는 귀를 막어서지는 못한다
뭉크의 절규는 눈이 아니라 귀를 그린 것이다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은 알 수 없으나
귀는 들리지 않는 것도 듣는다
빛은 지나가고 소리는 머물러 대지를 울린다
부처도 막판에는 눈을 감고 귀를 열었다
말했듯이 귀는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담는 것이 아니라 퍼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귀라 앞에 달린 것이고 눈은 옆에 달렸다
그 탓에 우리가 이제껏 흔들려
옆으로 걷는 것이다
박철 시인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단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7년 『창비 1987』에 「김포」 외 14편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 을』 『새의 전부』 『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험준한 사랑』 이 있다.
출처: 이기형 시인 3주기 추모 시 낭송회. 누리진
귀
귀 박철 오늘이 누이의 결혼기념일이란 얘길 들었다 누이는 병중에 있고 매제는 먼 곳에 있다 연초부터 부쩍 눈곱이 끼는 팔순의 어머니가 기침처럼 고향에 가보고 싶단 얘길 한다 낮에는 서어나무 숲을 걷는데 도토리 떨어지는 소릴 들었고 산비둘기 우는 소릴 들었다 밤에는 아내의 숨넘어가는 소릴 들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귀는 오랜 우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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