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 이수종
2019.10.28
살구나무집 윤참봉네 딸이라고 하면 다 알아들었습니다 과년하여 최 씨 네로 시집 온 후로는 살구나무 댁이나 최 씨 아내로 애들 낳고부터는 애들 엄마로 불렀습니다 평생 남 뒤에 숨어 살다가 병원에 입원하고서야 환자 이름표에 이름 석자 씁니다 부를 일 없어 축음기 엘피판처럼 직직거리지 않고 쓰지 않아서 빡빡하긴 해도 손주 이름 아프게 하는 거 같아 중호 할머니라고 안 쓰고 윤순옥이라고 적었습니다 윤순옥씨! 하고 이젠 누가 수줍게 불러주진 않아도 할머니에게도 하늘 같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병상에 눕고서야 그걸 얼떨결에 세상에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더보기 이수종 시인 충남 논산 출생. 한국문단 창조문학신문으로 등단. 시집 『시간여행』 『한 방울 또는 한 모금의 극진함』을 발표했다. 죽산문학상 수상, (사)녹색문단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