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난 희망을
인간의 지배를 벗은
깨끗한 죽음 그 후로 읽었다
길을 나설 때마다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올
희망이란
새로운 희망이란
세상 가득한 절창切創
최후의 노예처럼 끝없이 기다리며
정월에도 오뉴월 개처럼 아니 지하철에서조차 침을 흘린다
옆자리 여사는 눈을 내리깔고 있다
팔짱을 끼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성냥개비 같은 얼굴의 맞은편 사내
상의를 추스리며 不歸의 말을 내뱉는 남편을 외등처럼 올려다보는 저 젊은 만삭
그러나 사람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
창밖을 내다보지 않는 사람들
커튼을 치고 이불 속에 제왕처럼 누워
입 속 제 사탕 한 알 빨아먹듯
액정을 쩌억 쩍 긋는 사람들
달면 삼키듯 쓰면 뱉듯
지하인의 목 조르는 듯한 공명을 내며 열리고 닫힐 때마다
막차를 탄 기분이다
이런 사람들,
희망의 정신병자라 생각한
지하를 벗어나지 못한 난장이들은 불가능하게
매일 살아나
‘새로운 희망 운운’을 붙인 채 개꼬리처럼 흔들거리며
출발을 거듭하는 지하철
꽁무니를 보내고
국가가 보낸,
다음 차가 오기를 기다린다
고희림 시인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라고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99년 『작가세계』로 등단 했으며 시집으로 『평화의 속도』, 『인간의 문제』, 『대가리』가 있다. 현재 대구경북작가회의, 시월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고희림 시집 『대가리』 삶창, 2016. 누리진
지하철에서
지하철에서 고희림 한때 난 희망을 인간의 지배를 벗은 깨끗한 죽음 그 후로 읽었다 길을 나설 때마다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올 희망이란 새로운 희망이란 세상 가득한 절창切創 최후의 노예처럼 끝없이 기다리며 정월에도 오뉴월 개처럼 아니 지하철에서조차 침을 흘린다 옆자리 여사는 눈을 내리깔고 있다 팔짱을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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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리
국가와 자본의 죽임을 넘어코뮌으로 가는 시의 지난한 여정! 고희림의 세 번째 시집 『대가리』는 집요하게 국가의 폭력성을 묻는다. 아마도 시인 자신이 크게 관심을 갖고 있는 대구 10월 항쟁과 한국전쟁 시 발생했던 민간인 학살이 그 연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희림에게 그것보다 더 큰 폭력은 현재의 국가폭력이다. ‘대가리’ 연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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