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양철지붕엔 밤송이가 부서져 내렸다 메트로놈처럼 박자를 세던 나는 자주 무서웠고 자주 발등이 찍혔다
그 밤 무슨 말을 했던가, 툇마루에 앉아 멀뚱멀뚱 그녀가 타주는 커피만 삼켰던가, 어제는 신당의 보살이었던 그녀가 내일은 모텔의 청소부라며 웃었던가…
방울이며 북이며 그녀를 통해 울던 것들은 버려졌고 활옷이며 장신구들은 아궁이 속으로 들어갔다 자주 콜록거렸으며 긴 한숨이 다녀갔다
슬펐던 건 앞으로 그녀를 볼 수 없다…는 것보다
그녀를 찾아가던 숱한 언덕배기 골목길과 축 처진 담벼락들, 우거진 잡초들 속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던 금계국이나 개망초 따위, 개들이 컹컹 짖었고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리던 재개발 지구엔 흉곽을 드러낸 집들이 많았으며 자주 별빛이 휘청거렸고 맞은편 고층 건물 전광판엔 ‘브라보 유어 라이프’, 큼지막히 빛났다…는 것보다
막다른 골목 같았던 그녀가 타주는 커피를 더 이상 마실 수 없다…는 것, 달달했으며 배불렀던 그 위로를…
이제 그녀의 아이들은 마음 놓고 학원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오는 달빛이 ‘브라보 유어 라이프’ 내내 읊조릴 것이었다
신은숙 시인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다.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경희사이버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현재 강원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출처: 강원작가 18호. 누리진
브라보 유어 라이프
브라보 유어 라이프 신은숙 그 밤 양철지붕엔 밤송이가 부서져 내렸다 메트로놈처럼 박자를 세던 나는 자주 무서웠고 자주 발등이 찍혔다 그 밤 무슨 말을 했던가, 툇마루에 앉아 멀뚱멀뚱 그녀가 타주는 커피만 삼켰던가, 어제는 신당의 보살이었던 그녀가 내일은 모텔의 청소부라며 웃었던가… 방울이며 북이며 그녀를 통해 울던 것들은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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