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던 용나무골 오두막집은
불에 타, 이미 없어지고
찰흙으로 빚은 반신불
세월이 목을 잘라버려
찾아서 붙여놓았더니 여전하네요
맨발로 날라다 쌓은 돌탑
고집 센 몇 놈만 남아 바람과 빈둥거리네요
맨손으로 판 우물
개숫물로 쓰던 것은 맥이 끊기었고
위엣 우물은 가뭄에도 끄덕없이
맑은 경전 콸콸콸 쏟아내네요
그 곳을 떠나, 타지로 나온 나는
밥도 팔아보고 팔자도 팔아보았네요
내 방 천장과 벽에 깃발들을 꽂아놓고
무방울들 쥐어주며 마구 흔들어 보라시던
당신, 내 어깨 위에 앉아
이 산 저 산 마실 다니고 싶다고 하셨지요
내 입을 통해 헛소리를 하시던
당신이 싫어, 이 것 저 것 팽겨쳤는데요
콩알만 한 가게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는 참인데요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뚝배기에도 앉아보고
손님들 다녀간 식탁에도 앉아보시네요
그만 가셨는갑다 싶어 고개를 휘둘러보니
벽에 착 달라붙어 여정을 푸시네요
저고리 가지런히 개고 꽃잠을 주무시네요
뜨는 해가 눈꺼풀을 들추던가요
하얀 치맛자락 팔랑이며
먼 길 다녀가시네요, 할머니!
당신이 살던 용나무골 오두막집은
이미 불에 타 없어지고
유순예 시인
1965년, 전라북도 진안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2007년 『시선』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전자책 『나비, 다녀가시다』과 시집 『나비, 다녀가시다』를 발표했다. 계간 『시하늘』 편집•운영위원,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출처: 유순예 시집 «나비, 다녀가시다» (전자책). 누리진
나비, 다녀가시다
고향집 뒤뜰 배나무 가지가 까맣게 삭아 내리고 동구 밖 느티나무 둥치가 제 모습을 잃어갈수록 달구지와 화전에 젊음을 바친 아버지의 헛기침소리가 좋아졌다. 빈집만 늘어가는 고향 마을 고추밭에서 고추 대를 세우고 계실 아버지의 묵묵한 삶이 아버지를 닮아 가는 내 삶의 부분들이 나를 자꾸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낙엽 위를 걷는 빗소리가 방금 흙을 들어 올린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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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다녀가시다
나비, 다녀가시다 -무녀 할머니 유순예 당신이 살던 용나무골 오두막집은 불에 타, 이미 없어지고 찰흙으로 빚은 반신불 세월이 목을 잘라버려 찾아서 붙여놓았더니 여전하네요 맨발로 날라다 쌓은 돌탑 고집 센 몇 놈만 남아 바람과 빈둥거리네요 맨손으로 판 우물 개숫물로 쓰던 것은 맥이 끊기었고 위엣 우물은 가뭄에도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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