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아기 고래 한 마리
머리에 보트를 이고
갓 구워낸 말랑말랑한 빵 같은 바닷가를 걸어갑니다
에메랄드빛 방울 조약돌들이
새 바닷가에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고래는 바닷가를 뜯어 바다에 찍어먹으며
자꾸만 더 걸어갑니다
새 빵 냄새가 풍기는 바닷가 복판에
희디흰 아이 두 명이 앉아 있습니다
아기들도 바닷가를 뜯어먹습니다
말랑거리는 빵의 속살이
아기들의 손에서 바다의 입으로
건너갑니다
아기들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막 태어나는 바닷가를 쩝쩝 삼키고
조금씩 배가 늘어갑니다
고래가 아기들에게 말을 겁니다
걷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합니다
아기들은 웃으며
고래야 배를 저어가 보렴
고래는 다시 웃으며
우리는 사막으로 가야 한다고 합니다
사막,
노랗고,
따끈따끈하고,
고래는 거기가 고향이라고,
바나나껍질을 엮어서 만든 보트를 머리에 쓰고
한참을 걸어서 가야 한다고,
아이들은 바닷가 가장자리에 흰 빵처럼 서 있습니다
파도가 발목을 적시자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녹습니다
고래, 눈부신 아기 고래는,
아이들을 적셔서 뜯어먹고는 다시 보트를 입니다
모든 새 열매의 맛이 다 나는
빛나는
새파란 결정 같은
바다가, 맑은 수프처럼 고여 있습니다
노혜경 시인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1991년 『현대 시 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 『뜯어먹기 좋은 빵』, 『캣츠아이』『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 등이 있다.
출처: 노혜경 시집 『캣츠아이』 천년의시작, 2005. 누리진
뜯어먹기 좋은 빵
뜯어먹기 좋은 빵 노혜경 눈부신 아기 고래 한 마리 머리에 보트를 이고 갓 구워낸 말랑말랑한 빵 같은 바닷가를 걸어갑니다 에메랄드빛 방울 조약돌들이 새 바닷가에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고래는 바닷가를 뜯어 바다에 찍어먹으며 자꾸만 더 걸어갑니다 새 빵 냄새가 풍기는 바닷가 복판에 희디흰 아이 두 명이 앉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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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츠아이
고통의 보석 같은, 응축된 빛 속에 담긴 슬픔의 가루 같은, 단 한 조각만 몸 어딘가에 묻어도 안으로 환하게 빛나게 해주는 신비의 가루를 꿈꾸며 노혜경 시인이 6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自 序] 캣츠아이는 고통의 보석이다. 이물질을 내 안에서 빛의 다발로 엮어내려고 오래 참은. 그러나 캣츠아이를 보면서 사람들은 얼마나 아팠을까라고 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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