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이 뛰어나온 분홍무늬잠옷을 입은 늙은 토끼가 베개 밑 시간을 들춰본다 풀리지 않는 암호처럼 암담했던 어젯밤에서 빠져나와 아무렇게나 걸쳐놓은 하얀 스웨터에 털 뭉치 같은 머리를 집어넣는다 고치처럼 돌돌 말려있는 푸른 꿈을 펴서 다리를 밀어 넣자 휘청거리며 빨려 들어가는 뜨거웠던 여름
어제의 빗방울이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머리맡까지 찾아온 아침 오징어먹물 퍼지듯
첫눈 쏟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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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진 시인
1971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과 졸업 동 대학원 언어학 석사. 2015년 월간 『시문학』에 "우편함" "주민등록증" "서울지하철 2호선"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출처: 월간 『시문학』 2016년 2월호. 누리진
그리운 붉은 우산
그리운 붉은 우산 유수진 무릎이 뛰어나온 분홍무늬잠옷을 입은 늙은 토끼가 베개 밑 시간을 들춰본다 풀리지 않는 암호처럼 암담했던 어젯밤에서 빠져나와 아무렇게나 걸쳐놓은 하얀 스웨터에 털 뭉치 같은 머리를 집어넣는다 고치처럼 돌돌 말려있는 푸른 꿈을 펴서 다리를 밀어 넣자 휘청거리며 빨려 들어가는 뜨거웠던 여름 어제의 빗방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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