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기운다 물밀 듯 물이 밀려와 앞유리창을 떠민다
나의 물걸음은 왜 이리 더딜까
승냥이 같은 파도는 왜 이리 거셀까
저 하늘 먹구름은 왜 저리 햇빛을 가릴까
계단 아래 단비 목소리는 어이 잦아들까
아 아버지의 구부러진 지팡이는
사랑방 문고리에 걸려 있을까
5층 난간의 바람은 왜 이리 차가울까
이 선생님 배가 많이 기웁니다
손에 잡힌 난간이 힘을 주고 있어요
물바람이 거세게 밀려 옵니다
저 선창 안 우리의 꽃숭어리들
저 깊은 먹먹 바다에 잠기게 해선 안됩니다
해신이여
내 무거운 물걸음이 두렵습니다
내 무기력한 손아귀가 안타까워요
꽃의 신이여
저 어린 봉오리 봉오리들을
아빠엄마의 품속에서 또는 품밖에서도
꽃으로 피게 하십시오
내 젖은 가슴팎으로 안겨들게 하십시오
내 첫수업을 듣다 첫사랑 얘기를 해달라 조르던
왈패같은 그 아이가
앙주먹으로 유리창을 내리친다
끄떡도 않는 유리벽 안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외친다
선생님
우리는 꿈을 꼬옥 이루고 싶어요
우리는 꼬옥 꽃으로 피어나고 싶어요
엄마아빠의 눈물같은 사랑처럼
뜨겁게 효도 한번 하고 싶어요
우리 학교앞 떡뽁이집에서 라뽁이 먹어요
뒷목까지 차오른 바닷물이 목줄기로 넘어간다
아이들 손목을 끌어 나가라 외친다
한 아이가 나가나 싶더니
내 눈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우웁 용왕이시여
제가 청이가 되겠나이다
저 아이들을 일으켜 세워 주십시오
첫 수업 푸른 칠판에 이름을 쓰는 내 뒷통수에다
아이들은 깔깔대며 해맑은 눈빛들을 쏘아댄다
애들아 너희들을 마냥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애들아 너희들의 역사교과서에
우리들의 사랑과 눈물과 꿈을 적었으면 좋겠다
5.16교과서 말고 친일교과서 말고
6.15공동선언이나 10,4선언이 씌어진
통일교과서 아니면 4.16세월호 교과서를 만들어
함께 배웠으면 좋겠다
뱃머리마저 잠긴 칠흑바다에서
저 전조등만이 우리의 운명을 비추고 있구나
그래 속푸른 심연의 바다에서
우리의 잠은 깊어지겠지
문창길 시인
전북 김제 출생. 1984년 ⟪두레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집 『철길이 희망하는 것은』을 발표했다. 도서출판 들꽃 대표. ⟪창작21⟫ ⟪작가연대⟫ 편집주간.
416 청이 선생님
416 청이 선생님 문 창 길 배가 기운다 물밀 듯 물이 밀려와 앞유리창을 떠민다 나의 물걸음은 왜 이리 더딜까 승냥이 같은 파도는 왜 이리 거셀까 저 하늘 먹구름은 왜 저리 햇빛을 가릴까 계단 아래 단비 목소리는 어이 잦아들까 아 아버지의 구부러진 지팡이는 사랑방 문고리에 걸려 있을까 5층 난간의 바람은 왜 이리 차가울까 이…
www.nuriz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