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뚝딱, 한 그릇의 밥을 죽이다 | 이덕규
2020.01.19
이덕규 시 '뚝딱, 한 그릇의 밥을 죽이다' 먼 들판에서 일에 몰두하다 보면 문득 허기가 밀려와 팔다리를 마구 흔들어댈 때가 있다 사람을 삼시 세끼 밥상 앞에 무릎 꿇려야 직성이 풀리는 밥의 오래된 폭력이다 때를 거르면 나를 잡아먹겠다는 듯이 사지를 흔들어대는 허기진 밥의 주식(主食)은 그러니까 오래전부터 사람이다 결국 사람은 모두 밥에게 먹힌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빈 밥통의 떨림 그러나, 우물처럼 깊고 어두운 밥통의 고요한 중심에 내려가 맑은 공명을 즐기듯 먹먹하게 담배를 피워 물고 논두렁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느 순간 감쪽같이 배고픔이 사라지고 어떤 기운이 나를 다시 천천히 일으켜 세우는 것인데, 그 힘은 내 마음 어딘가에 마지막으로 밥을 제압하기 위해 비축해둔 또 다른 밥의 농밀한 엑기스인 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