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자 노란 은행잎이 뛰어내리고
그보다 먼저 캡사이신이 공중에 흩날린다
일이 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라는 듯
세월호 천막이 덩달아 펄럭거린다
뭉쳐진 물알이 대포로 펑펑 터졌던 바닥은
지난밤을 증거하듯 젖어 있고
구겨진 양말과 생수병 몇이 뒹굴고 있다
이순신 장군 칼 끝에
비둘기가 잠,깐 앉았다 날아갔다
그 사이 장군의 시선이 동화면세점, 동아일보 건물과
조선일보 스포츠서울을 훑는다
세종대왕이 한 손에 책을 들고
딱딱한 미소를 짓고 있다
지하에서 방금 올라온 빗자루가
뒹구는 것들을 쓸어가고
완고한 굽들이 보도블럭을 울리며 순찰을 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사이에
빛과 바람과 소리들이 떠도는 사이
은행나무 가지가 공중 좌표를 찾느라 더듬거린다
저 멀리 북악산을 등에 진 푸른 기와지붕이
이 모든 것을
근엄하게 굽어보고 있다
박설희 시인
1964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와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장안문을 머리에 이고」 외 4편으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실천문학, 2008)이 있다.
출처: Ⓒ누리진 2016.05.01
광화문, 2015
광화문, 2015 박설희 바람이 불자 노란 은행잎이 뛰어내리고 그보다 먼저 캡사이신이 공중에 흩날린다 일이 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라는 듯 세월호 천막이 덩달아 펄럭거린다 뭉쳐진 물알이 대포로 펑펑 터졌던 바닥은 지난밤을 증거하듯 젖어 있고 구겨진 양말과 생수병 몇이 뒹굴고 있다 이순신 장군 칼 끝에 비둘기가 잠,깐 앉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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